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리드쇼프 난센 (문단 편집) === 북극 탐험 === 1893년, 자신이 설계한 '프람 호'[* 이름의 뜻은 '전진'. 배의 바닥이 둥글린 형상이였는데. 이는 유빙이 압박을 가하면 자연스럽게 위로 미끄러져 나오도록 하기 위함이었다. [[https://m.blog.naver.com/PostView.naver?isHttpsRedirect=true&blogId=beetle55&logNo=100175321018|프람 호의 자세한 구조]]]를 타고 [[북극점]] 정복을 시도했다.[* 이때 난센은 '''"몇 년간 표류하다 보면 알아서 북극점에 도달하겠지."'''라는 비범한 생각으로 8년치 연료와 6년치 식량을 싣고 갔다.] 하지만 북극점 도달이 프람 호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자, 동료 얄마르 요한센(Hjalmar Johansen)과 함께 걸어서 북쪽으로 향했다. 1895년 4월 북위 86° 14´ 지점에 도달했다. 이는 이때까지 인간이 도달한 지점 중 가장 북쪽에 간 것이다. 그러나 식량 부족으로 북극점을 밟지는 못하고 귀환을 선택, [[바다코끼리]]와 [[북극곰]]을 잡아 연명하면서 남쪽으로 향하다가 프레더릭 조지 잭슨(Frederick George Jackson)의 영국 탐험대에게 구조되었다. 북극에서 돌아온 뒤에는 새로 독립한 조국 노르웨이의 정치 관련 일이 바빠지면서 탐험가로서는 은퇴하고, 후배 탐험가인 [[로알 아문센]]의 후원자가 되었다. 난센은 아문센에게 '프람 호'를 물려주었고, 자신의 동료 얄마르 요한센도 데려가게 했다.[* 이때 아문센이 남극 탐험 계획을 밝히며 난센에게 조언을 구하자 '''나이만 좀 젊었으면 나도 따라가는 건데''' 라며 아쉬워했다고 한다. 물론 난센이 일행에 합류하는순간 리더가 바뀌게 될 것이므로 현실성은 전혀 없었지만.] 이것이 요한센에게는 오히려 불행이 되었지만…[* 물론 대다수의 문제는 요한센 본인이 자초한 것도 있긴 했다.] 그 외에도 남극 탐험에 나서는 영국의 [[어니스트 섀클턴]]에게도 여러가지 조언을 해주었다. 그러나 새클턴은 조랑말과 설상차(스노모빌) 대신, 썰매개를 권한 난센의 조언을 무시했다가 결국 남극 탐험에 실패했다.[* 물론, 섀클턴이 스콧처럼 무작정 무시한 건 아니고, 나름의 계산으로 조랑말을 택했던 것이다. 문제라면, 남극이 섀클턴의 예상 이상으로 극한지대였다는 것.] 그래도 새클턴은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실패를 인정하고 대원들을 살려서 귀환했다. 그러나 [[로버트 스콧]]은 섀클턴의 실패를 무시하고 난센과 아문센의 조언도 무시하며 고집을 부렸다가 비참하게 사망했다. [[아문센 vs 스콧]] 항목에서 나오듯이 난센은 스콧을 무모하다고 비난했는데[* 앞서 탐험가들이 극지방 탐험에서 사용한 개썰매를 두고 "'''잔인한 동물학대'''"라고 비난하는 스콧의 면전에서 "'''그러면 사람이 썰매를 끌게 하는 건 어떻게 생각하는데요?'''"라고 받아쳤다.] 난센의 비난과 지적은 확실히 들어맞았다.[* 물론 스콧도 마냥 대책없이 아무튼 개썰매 안 된다고 말한 것은 아니라서 남극점 정복때 조랑말과 설상차 심지어 개썰매까지 동원했지만 조랑말과 설상차는 너무 무거웠으며 심지어 조랑말은 너무 추워서 얼어죽고 설상차도 물에 빠져 고장나는 등 도움이 안 되었고 개썰매마저 베이스캠프를 세우는데는 썼지만 정작 남극점 탐험때는 안 썼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